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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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非婚) [:] 001」 「명사결혼하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

비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대표적인 명칭은 '미혼'이었다. '미혼 여성', '골드미스', '노처녀'와 같은 단어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문제적인 인물로, 저출산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저 혼자 잘 살겠다고 애국하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으로, 혹은 결혼 시장에서 '팔리지못한 채 나이 든 여성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비혼은 점차 보편적인 삶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통계청의 2018년 사회 조사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48.1%로 절반을 채 넘지 못했다. 인식의 변화는 실제 1인 가구의 비율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 28.5%였던 1인 가구의 비율은 2019111일 기준 30.2%가 되었고, 2027년에는 32.9%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유의미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으며, 한국 사회의 가구 구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혼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실제로 포함하는 삶의 모습보다 훨씬 더 협소한, 단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만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결혼혹은 결혼식과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쉽게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 신혼의 행복과 시가와의 갈등, 많은 변화와 그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보고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비혼생활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그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이는 비혼을 독립적인 삶의 한 형태가 아니라 원래 상태의 유지에 불과한 것으로, 어떤 변화를 겪기 전의 임시적인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비혼에서 비혼 사회가 아닌 비혼인()’을 볼 필요가 있다. 비혼 가구의 양적 증가라는 거시적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어떤 삶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에서 끝나는, 일시적인 선언도 임시적인 상태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안정성과 정상성을 부여해주는 결혼 제도 밖에서도 유지해 나가야 하는 개인의 삶에 대한 것으로서 비혼은 그 자체로 생애 모델이며, 비혼인은 삶의 터전과 대화를 나눌 친구, 커리어를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 네트워킹하는,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다.

비혼 여성의 지속가능한 삶을 돕기 위해 최근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비혼 공동체가 다수 만들어졌다. ‘비혼이라는 개념이 떠오른 것이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비혼 공동체 역시 전에 없던 길을 걸으며 많은 고민 지점에 부딪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만들어간다. 2019년에 만들어져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비혼 공동체 ‘emif(에미프)’도 그러한 비혼 공동체 중 하나이다. 우리는 emif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혼 여성의 삶과,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비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emif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별: 안녕하세요. emif비혼 여성들의 도약을 위한 커넥션 커뮤니티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비혼 여성 단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비혼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그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여성들의 커뮤니티, 상생을 얘기하는 단체도 적고요. emif는 비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20194월부터 출범을 했고요, 현재 120명 정도의 회원분들이 계십니다.

 

emif를 만들게 된 계기를 더 자세하게 여쭤보고 싶어요.

한별: 저희는 결혼하는 게 정상인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결혼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사실 편견인데, 그걸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나고 자라서 결혼이 아닌 상태에 대한 상상이 빈약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왜 결혼해야하지?’라는 질문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이기적이다같은 편견에 가려졌던 여성들이 더 드러나고 있어요. 저희는 이렇게 다양한 결혼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더 뭉쳐서 존재를 확인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나누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emif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디렉터*분들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디렉터: 한별, 아람, 예닮, 나리, 현지. 다섯 명의 공동대표를 부르는 emif 내부의 호칭.

예닮: 저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결혼 안 할 건데요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웃음) 미디어에서 보이는 연애, 결혼, 사랑이 실제와 다르다고 느꼈고, 현실의 일대일 결혼 관계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비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저는 여남별상의 경상도 집안에서 자라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결혼과 거리가 멀어졌어요 명절날 어머니가 열 몇 시간을 운전해 내려가셔서 하루종일 음식을 하셨는데도 여전히 여자상 남자상이 따로 있고, 남자상에 더 좋은 음식이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사실 요즘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연애나 결혼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나리: 저도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최근 결혼을 한 언니를 보면서 비혼 결심을 굳혔어요. 결혼, 출산, 임신, 육아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 내가 사회에서 무언가 하고 싶다면 결혼은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별: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저희 집은 돈을 벌어오는 것도 어머니, 집안일을 하는 것도 어머니신데요,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셨어요. 전형적인 가족상도 아닌데 왜 그럴까 의문이었는데, 이건 시스템의 문제구나, 결혼은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가 아니구나 깨달았죠. 저는 결혼이 사랑의 결과라기보단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면 내가 나를 희생하면서 제도 안에 편입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비혼을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께 밝히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예닮: 사실 부모님은 아직 모르세요.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물어보시면 안 할 거라고 꾸준히 말씀드리는데, 기독교 집안이라 그러면 왜 성경의 말씀을 거스르냐고 하세요. 창조주의 질서를 거스른다고 하시면 저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자들이 정말 잘하는 자라고 말했다고 성경으로 방어하죠. (웃음) 어머니는 아직 비혼을 받아들이지 못하신 것 같아요. 다른 주변 사람을 생각해보면, 전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교회에 있는 언니들이 청년 3부까지만 가고 끝내자고 많이 말했었어요. 청년부가 30대 초반까지 3부고, 결혼을 하면 어른 예배로 넘어가지만 결혼을 안 하면 계속 청년 4부거든요.

나리: 결혼을 안 하면 어른 예배를 못 봐요?

예닮: 그건 아니지만 그냥 청년부에 계속 속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들이 3부일 때 결혼해서 4부는 가지 말자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어차피 다들 비슷하니까 아무나 만나라는 분위기였죠.

일동: 나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나리: 저는 어머니께 처음 말씀드렸을 때는 응원해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안 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많은 대화 끝에 결론은, 어머니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비혼 결심에 대해 100% 동의하지는 않으세요. 기성세대이시기 때문에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아시니까 마음으로는 응원해주시지만 아직 머리로는 조금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요.

현지: 저희 어머니는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라. 저희 가족은 모계가 끈끈해서 저도 이모와 굉장히 가깝거든요. 그런데 이모가 항상 여자로서 가장 큰 행복은 결혼이다 하셨어요. 근데 제가 결혼 안 하려고 단체를 만들었다, 책도 냈다 하니까 그래 너 같은 애는 결혼 안 하겠다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공식적으로 비혼을 선언한, 네 저는 어른들과 적절히 타협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별: 저희 집은 제가 결혼 안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흘려 들으셨는데, 나중에는 부정적으로 반응을 하셨어요. 어머니의 경우에는, 제가 남편이 없는 것은 괜찮은데, (어머니는) 저로 인해 굉장히 많은 위로를 받고 삶의 에너지를 얻었는데 딸이 자식을 낳아 보지 않는 거는 조금 아쉽기는 하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애는 어떻게 낳아볼게 이랬죠. 그랬더니 웃으시더라고요.

 

emif가 지향하는 비혼의 모습이 있나요?

한별: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성들이 뭘 하겠다거나, 단체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이 쟤네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하는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몇 년 전에 10살 어린 친구가 저한테 너처럼 살고 싶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살고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비혼이 좋다, 해야 한다하고 설득하는 것보다 제가 비혼으로서 즐겁게 살아가고, 묵묵히 이 자리에서 활동하며 여성들을 만나는 게 사람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전달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모습을 보면 나도 즐거워지고 싶어서 쟤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잖아요. 그런 단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혼여성 공동체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별: 저희가 페미니즘을 하는, 페미니즘 단체라고 정의하고 단체를 운영하지는 않았어요. 페미니즘 단체라는 건, ‘페미니즘을 하겠다는 것보다 어떤 행보가 페미니즘적이다라고 이후에 평가되는 거잖아요. emif는 비혼 여성들의 삶을 지키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단체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희의 일이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 페미니즘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emif가 스스로 페미니즘 단체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현지: 행사를 기획하거나 내외부적으로 논의할 때 온도에 대한 부분을 많이 고민하긴 해요.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과 단체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니까, (페미니즘 단체이기 이전에 비혼 공동체로서) 그 온도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죠.

나리: 페미니즘 단체라고 여겨지면 늘 왜 이러저러한 문제들에는 목소리 내지 않느냐고 많이 지적받는 것 같아요. 규모를 넓히고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온도를 고민했어요.

한별: emif는 커넥션 커뮤니티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이 소통하며 정보를 나누고, 능력을 갖춘 여성들을 서로 끌어줄 수 있는 단체가 되고자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도약을 위한 커넥션 커뮤니티이거든요. 여성들이 비혼의 삶을 고려한다면, 혹은 결정한다면 emif 안에서 평생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단체를 만들 수 있게끔 그런 고민들을 했죠. 그러한 단체를 페미니즘이라고 누군가 평가해주실 수는 있겠죠, 근데 저희는 여성들을 위한 커넥션 커뮤니티로서, 여성들이 비혼의 삶을 고려한다면, 혹은 결정한다면 emif 안에서 평생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는 단체가 되게끔 그런 고민들을 주로 했어요.

 

emif는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회원 분들이 직접 기획한 것도 있고요.

나리: 저희가 운영하는 고정 컨텐츠는 ‘emif Meetup’, ‘emif TED’, ‘emif CAMP’, 그리고 ‘emif의 밤입니다. 그 외에는 디렉터들이 의견을 내거나 회원분들께서 아이디어를 주세요. 가장 근래에는 ‘emif 100일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그것도 한 회원분게서 지금 너랑 나랑 사귀면 100일 뒤에 크리스마스야라는 문구를 바꿔서 100일 뒤에 이루고 싶은 나의 모습을 정해두고 크리스마스에 그 변한 모습을 선물로 받자는 취지의 기획을 해주셔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예닮: 그리고 <잡지비평>도 있죠.

나리: , 회원분들 두세 분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글을 쓰고 싶은데 창구가 없으니까 우리가 (창구를) 만들자 해서 시작했고요. 지금 열 한 분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한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래도 돼라는 응원이나 추진해나가는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잖아요. emif는 회원분들의 아이디어를 포착해서 이를 실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지원해드리려고 해요.

현지: 실제로 강연을 하신 분도 계세요.

한별: 맞아요. ‘기획을 한다고 말하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실 되게 많은 기획을 하잖아요. 그런데 강연을 하고 싶어도 사람을 모으고 무대도 만들고 홍보도 해야 하니까, 그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해서 부담이 될 때 도와줄 수 있는 단체,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라는 점이 emif의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소그룹 활동도 많던데, 디렉터분들께서 다 기획하시는 건가요?

나리: 회원분들께서 하시는 거예요. 경제스터디 in의 경우 원래는 저희끼리 소규모 스터디그룹을 운영하고, 마지막에는 전문가를 모셔서 강연을 들은 후에, 저희가 재강연하는 형태를 상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아는 게 없는 것 같은 개인들도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니 각자 나눌 지식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서로 지식을 나누고 말을 얹고 정보를 보태주는 식으로 내부 인원으로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 저도 경제 문외한인데, 비혼 여성으로 잘 살려면 경제 지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경제 소모임 in에 뛰어들었어요. 매 모임마다 각자 주제에 대해 공부해 온 다음 품앗이하듯이 나누는 자리였는데,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거니 했던 소소한 지식들도 알고 보니 되게 유익하더라고요.

 

가장 인상 깊은 행사는 무엇이었나요?

현지: 가장 즐거운 행사는 emif CAMP였어요.

나리: 저희가 2020년 초에 회원분들과 emif CAMP를 다녀왔거든요. 흔히 캠프, MT를 생각하면 술만 마시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친목을 위해 협업할 수 있는 운동 경기도 다 일정에 넣었어요. 역시나, 예상대로 그게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예닮: 몸으로 부딪히면 금방 친해집니다.

한별: 맞아요. 여자들끼리 같이 뛰어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현지: 저도 정말 즐거웠는데요, (웃음) 저희가 준비운동으로 팔벌려뛰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같이 둘러서서 팔벌려뛰기를 해본 마지막 시간이 고등학생 때인 거예요. 같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게 정말 몇 년만의 일이라서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른 분들도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리: 가장 뜻 깊은 행사는 emif TED였어요. 사실 강연이 많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해라고 말씀하셨던 분들도 대본을 쓰고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점점 자신감을 가지시고 결국 무대에서 멋지게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벅찼어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예닮: 처음에 다들 못하겠어요, 안 할래요 하셨거든요. (웃음) 그런데 올라가서는 다들 잘하시고 반응도 너무 좋고.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럴 거면 왜 떠셨나 싶었어요.

한별: 저도 즐거웠던 행사는 emif CAMP, 디렉터로서 의미 있었던 행사는 emif TED였어요. emif TED#여성에게마이크를 이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한 활동인데요,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여성들이 더 그렇고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도 쉽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본인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도,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는 분이 분명 계세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행사를 만들었어요. 말을 하는 사람도 여자고, 듣는 청중도 여자고, 그래서 굳이 우리가 여자라는 걸 강조하지 않아도 여성 시각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현지: 저도 1emif TED에서 무대에 올랐는데요, 저는 연단에서 말을 하면서도 다 아는 내용이 아닌가,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 내용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두 번째 emif TED까지 참여했습니다. 저는 빨간약과 인간관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강연을 했어요. 전공이 사회학이라, 여성주의로 통용되는 소위 빨간약을 어떻게 먹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 관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씀드리고, 그걸 사회학적으로 분석해봤어요.

예닮: 브라보~

현지: 감사합니다. Thank you

한별: 다른 강연으로는 비전공자로서 개발자로 일하고 계신 이야기, IT 관련 강연이 있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IT 분야로 넘어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예닮: 과학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라는 과학 강연도 있었어요.

한별: 그림책을 그리시는 분이 여성 서사 동화 쓰기에 대해 얘기해주시기도 했어요.

나리: 마음 챙기기에 관한 강연도 있었어요.

한별: , 여성의 질과 성, 제대로 된 성교육에 관한 강연도 있었어요.

현지: 되게 알찬 내용이 많았네요

예닮: 흥미로웠어요

 

비혼 여성에 대해, 비혼을 하면 외로울 것이다, 인간 관계가 단절될 것이다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많은데요, emif의 회원분들이 경험하시는 내용은 어떤지 궁금해요.

한별: (비혼 여성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어차피 결혼하면 친구 관계가 끊어진다는 인식이 만연하죠.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기 전까지는 친구와 만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지만 결국에는 제 친구들도 아이를 낳고 나면 남편의 눈치를 보거나, 시간의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는 해요.

현지: 제 친구는 아들이 두 명이 있거든요. 그 친구를 만나려면 약속 장소가 키즈카페여야 해요. 아이들을 풀어놓고 나서야 저희끼리 얘기를 할 수 있고, 대화 주제도 제한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한별: 그런 식으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인연이 끊어진다는, (여성 모두에 대한) 학습된 사회적 현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비혼 여성이 외롭다는 편견에 대해서는, 사실 인간은 원래 다 외롭잖아요. 이걸 인정을 하고, 어떻게 그 감정을 승화시키는지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온 세상의 미디어가 마치 결혼을 해서 베필을 찾으면 이 외로움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처럼 말하거든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결혼을 해서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 기대감이 커져있는 관계에서 가까움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오히려 거기서 느끼는 외로움이 더 큰 부분도 있고요.

 

만약 주변 사람들이 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버리면,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공통 대화 주제가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비혼 친구와 함께 나중에 서른 살이 되면 같이 살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어요.

한별: 이런 약속을 하는 게 굉장히 상징적이고 중요한 한편, 생각해볼 지점이 또 있어요. 친구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에너지가 된다면 좋겠지만, 내가 친구에게 기대는 형태가 되어 버리면 결국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타인에게 에너지를 뺏기고 있는 거잖아요. 비혼의 본질은 나 스스로 단단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을 느꼈을 때 , 나 조금 외롭네? 그러면 오늘은 누구랑 같이 밥 먹어볼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유연함과, 지치지 않고 그럴 수 있지이렇게 나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비혼의 긍정적인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닮: 이상 단단해지고 싶은 한별님이었습니다.

 

비혼 여성에 대한 다른 편견도 많은데, 이를테면 비혼 여성은 일에만 매진한다는 편견도 있죠.

한별: 일에 대한 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 다 겪고 있는 거죠. 다만 스스로 단단하고 여유가 있으려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니까, 비혼 여성들성취 욕구가 강하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비혼 여성이 사랑을 모르고, 때를 놓쳤고, 일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그리죠. 그게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선택하기 위해서 커리어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고, 직업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지: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제외한 상태에서 내가 사회에서 어떻게 더 단단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까에 주안점에 두고 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에 좀 더 매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남성과 동등할 뿐인데 대부분의 여성은 그렇지 못하니까, 다른 여성에 비해 일에 매진한다는 측면이 더 부각되는 것 같네요.

나리: 이 질문이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비혼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잖아요? 기혼 여성을 떠올렸을 때는 일 외에 육아하는 모습만 그려지는데, 남성은 기혼이든 비혼이든 일하는 모습이 기본 전제가 되는거죠. 사실 비혼 여성이라고 일에 매진한다기 보다는 정말 딱 아이만 안 돌볼 뿐인데. 마치 일에만 미쳐있는, 어떤 광기 있는 모습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런 인식의 밑바탕에 있는 전제가 보여서 굉장히 재미있어요. 돌이켜보면 왜 예전에 직장 상사가 노처녀 히스테리부린다이런 도 여기에 기반한 이미지 같네요.

 

말씀해주신 것 처럼 비혼 여성에게 커리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혹시 그 외에 30-40대 비혼 여성에게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일동: (손으로 돈 모양을 만든다) 👌 👌 👌 👌

예닮: 이 손 모양이 보이시나요? 여유로움은 통장 잔고에서 나옵니다.

한별: 진짜 정답이에요. 검소하게 살아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여유로워질 수 있고, 여유로울 때 베풀 수도, 상상할 수 있고, 기회를 지나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경제력이 필요하고, 그 경제력을 쌓기 위해 커리어가 필요한 거겠죠? 그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 같고 그 외에 주거, 건강, 마음, 이동권도 중요하죠. 말씀드린 것들이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없으면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하나 욕심내서 덧붙이자면.

예닮: EMIF.

현지: 완벽.

한별: .. emif는 당연히 들어가는 거니까 (웃음), 하나 더 붙이자면. 나를 잘 아셨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한창 모든 사람이 연애를 종용할 때, 인터넷에 보면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잘 캐치하는가와 관련한 굉장히 많은 스킬들이 나왔거든요?

나리: 남친 달래주는 법.

한별: 그렇죠. 그런데 (달래줘야 하는) 대상을 나의 내면이라고 생각하면, 좀 달라요. 내가 지금 뭔가를 너무 하기 싫은데 이성적인 자아는 하라고 하고, 그럼 하기 싫은 나는 아파요. 그랬을 때 하기 싫은, 아픈 나를 달래는 방법. 그런 걸 찾아가면서

나리: 나에게로 떠나야 하는 여행

한별: .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야 풀리고. 누구랑 있을 때 좋고 어디에 있을 때 편하고. 이런 것들을 알아야 내가 주거에 집중해야 하는지, 이동권에 집중해야 하는지, 혹은 사람에 집중해야 하는지, 이런 주력 포인트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제도적 차원에서 비혼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혹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emif 내부에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현지: 제도적으로 받아야 할 혜택이라는 것이 사실, 주거와 같이 저희가 직접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한계가 있기는 해요.

한별: 그래도 이런 제도적 차원의 주장을 emif가 조금 더 하고, emif 내부에 담당 섹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어요. 다만 아직은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고, 이런 주장은 사회운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emif의 역할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emif 내에서 청약이나 주거를 더 빨리 취득하는 방법이나, 그 외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사업에 어떻게 더 많이 참여하고, 우리가 내는 세금만큼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1인 가구를 위한 공론장을 열어서 정책적인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들었어요.

한별: 아 맞아요. 일단 비혼 여성은 아무래도 1인 가구로 많이 살아가는데요, 아직 1인 가구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공동체 주거에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정작 혼자 사는 사람의 삶은 거기서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1인 가구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공론장을 기획했어요. emif가 비혼 단체로 가시화가 되면서 정책적인 자리들에 초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런 자리에서 좀 더 실효성 있는 데이터를 전달한다면 우리의 주장을 더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공론장을 통해 정보를 쌓아가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비혼 공동체를 결성하고 운영하면서 고민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나리: 저는 롤모델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뭐든지 우리가 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거? 회칙을 만들 때도 다른 회칙을 참고하고 우리에게 맞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었는데요, 그래도 그 과정을 겪어서 기반이 훨씬 단단해진 것은 있어요.

현지: 롤모델이랑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확신이 없어요. 제 딴에는 충분히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정말 충분한가? 더 해야 하나? 어디까지 저의 역할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비혼 여성 공동체를 운영하시는 분은 아무래도 없었다가 갓 생긴 단체가 많으니까, 저희가 이런 부분을 어떻게 타개하는지, 그런 모습이 분명 다른 분들에게도 자극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예닮: 저는 작년에 emif가 계속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못해서, emif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우리가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르고,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한별: 저는 어떤 모임이든 간에 코어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뭉쳐있는지가 단체의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emif공동체이기는 하지만 확장성을 가진 단체를 표방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디렉터를 잃어버리지 않고, 뭉쳐가면서도 단체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디렉터들끼리 끈끈하고 즐겁게 보이려는 노력도 해요. 저희가 하나의 모델로서 emif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 연결들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외에도 emif 내부에서 어떻게 소속감을 만들어 가시는지도 궁금해요. 디렉터 분들은 비교적 어린 나이이신데, 다양한 연령대와 삶의 방식을 가진 회원분들의 필요를 어떻게 발견하고 충족시키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별: 일단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한 여성의 삶은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회원분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디렉터의 역할은, 그 분들을 시니어적인 위치로 배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20-30대는 꼰대 문화에 대한 많은 공포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임자로부터 조언, 가르침을 얻을 기회가 많이 상실된 것 같았어요.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민을 나누거나, 그냥 나는 이랬어라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굉장한 자산이고 에너지가 되는데, 그게 상대방에게는 과연 어떻게 닿을지가 고민이 되는거죠. 그런 연결의 자리를 만드는 게 저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emif는 어떤 활동을 더 하고 싶은지,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혼 여성들의 커넥션 커뮤니티잖아요. 그래서 어디서든 emif 회원을 만날 수 있도록, 큰 규모로, 더 넓게 확장성을 가진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목표이자 활동 계획입니다.

나리: 미디어를 통해 비혼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꿔놓는 것? 그런 일들이 저희나 저희 이후에 나 비혼이야라고 말하는 여성들한테 힘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별: 저는 emif하면 떠오르는 전문적인 영역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혼을 가시화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일조를 했고, 그래서 이제 그 역할은 토스를 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 emif의 존재 목표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목표 자체는 저희가 더 논의를 해서 합의를 봐야 하겠지만, 아무튼 전문성이 있는 포인트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리: 비혼 여성 인력사무소도 만들고 싶습니다!

한별: 개인적으로 emif의 이름으로 대학교 강연을 하는 것도 목표였어요. 많은 분들이 저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뭔가 좀 무섭고, 드세고, 비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학생분들께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가 열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생겼죠.

예닮: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출판한 <비혼 수업> 책이 청소년 분들에게 인기가 꽤 있는 것 같아서... (학생분들을 만나보고 싶네요.) 저희 책 잘나왔어요.

 

꼭 사겠습니다.

현지: 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시다면 <비혼 수업>을 통해서

예닮: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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