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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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흔히 낭만적 사랑의 결실이자, 삶이라는 서사의 (영구적이거나 일차적인) 귀결로여겨져왔다. 그러나 결혼은 비단 사랑하는 이들끼리 부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이미 사회적인 제도로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 가족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이슈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결혼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어떤 울퉁불퉁한 의미의 지형을 발견할 수 있을까.

결혼은 현대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가족이 구성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이때의 가족은 일상적으로 스민 권력과 지배를 통해 가부장제 원리를 구현하고 다시금 강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발전주의 기획에 동원된 가부장적 성별 분업을 통해 여성은 사적 영역에 제한되어 가정을 관리하는 주체가 되었고 이에 맞춰 여타의 사회적 영역이 재편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젠더 불평등이 재/구성되었다. 이후 여러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젠더 관계 및 가족 관계 역시 변화해왔으나 가족 안팎의 여성은 여전히 아내와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두고 불화하고 때론 순응하며 알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한편, 혼인 관계를 맺는 공식적인 시작으로서 결혼식은 어떨까. 검색창에 결혼 준비 리스트라고 입력하면 상견례부터 예식장, 신혼여행,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예물예단, 혼수에 이르는 갖가지 항목을 ‘D-00’이라는 기준에 맞춰 친절히 소개하는 블로그 글을 찾을 수 있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동시에 그 의례가 이뤄지는 방식은 다양한 사회역사적 조건의 영향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산업화 시기 근대화 명목으로 가정의례준칙이 만들어져 국민 생활을 관리하려는 시도가 이뤄졌고 서구식 의례를 수입하면서 전통적인 혼례는 축소되었다. 또한 웨딩 산업이 생겨나면서 일련의 결혼절차들이 규격화된 소비 양식과 결부되었고, 순수 결혼식 준비 비용만 6,000만원에 이르는 등 결혼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다. 이는 결혼을 꺼리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며 고비용을 충당하는 데에 부모의 자산이 투입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결혼식의 여러 장면들은 젠더에 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코드들을 노골적이거나 은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김수아·이수연의 <결혼 의례의 기호학적 분석-낭만적 사랑의 신화와 성 역할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결혼식의 여러 상징과 절차에는 젠더 차별적 이데올로기가 녹아있다. 결혼이 전제하는, 가부장제 하의 가족 완성이라는 현실적인 관계가 의례 절차에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부는 신부 대기실에 머물며 본식의 신부 입장 전에는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신랑과 달리 신부는 식을 주도하는 주체가 아니며 일종의 교환 대상으로서 신비화·물신화된다. 이외에도 신부는 전형적인 화려하고 긴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걷거나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주례사나 혼인 서약서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랑은 신부를 아끼고’, 신부는 신랑을 존경하며 신부는 남편에게 아침밥을 챙겨주며 신랑은 적어도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꼭 하겠다는 식이다.

결혼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지적하며 누군가는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비혼, 비출산이 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확고한 선언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마음 속에서 어떤 제동의 감정들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와 결합되어 왔으며, 사회가 허용하는 사랑과 생애에 대한 메시지를 온방위로 내보내는 수신자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결혼 그 자체를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혼인 혹은 가족 관계를 변화시키는 실천이 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나의 욕망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지 질문하고, 그 욕망들이 어떤 식으로 좌절되는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갈등을 마주하고, 나와 우리의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일상의 관계를 실제로 하나하나 바꾸어가는 것. 그것은 몹시 지난하고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그러한 순간과 노력이 모여 가족이라는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서, 결혼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결혼식을 고민하고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히스와 푸른 두 사람에게 결혼식에 대한 동일한 질문을 건넸다. 히스는 예물과 식장, 신랑신부 입장, 주례, 폐백 등 처음부터 마지막에 이르는 단계들이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것만 같은 우리 사회의 정형화된 결혼 과정을 하나하나 따져묻고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와 가치를 녹여냈다. 푸른은 깨끗한 하늘과 한데 오래 터잡은 정자나무가 드리우는 너른 그늘 아래에서 몹시 느긋하고 자유롭지만, 곳곳에 많은 고민과 정성이 담긴 결혼식을 올렸다. 푸른은 자신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고 이는 무슨 옷을 입고, 어떻게 손님들을 맞을지를 넘어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보살피고 대화하며, 삶을 꾸려나갈 것인지로 갈래갈래 뻗어나갔다.

 


히스의 이야기

1. 보편적인 형태의 결혼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결혼식을 하고자 했던 동기나 이유는?

처음부터 난 다른 방식의 결혼식을 할거야라고 생각해왔던 건 아니었어요. 보편적인 형태의 결혼식은 다 잘못됐다거나 마냥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구요. 저희는 왜(why)가 중요했던 거 같아요. 기존에 우리가 하객으로 경험한 결혼식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왜 그런 절차가 필요했을까를 고민해봤어요. 생각보다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절차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예를 들면 신부대기실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였고 이런 절차는 과감히 제외했어요.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앞에 놓인 단상만 열심히 쳐다보는 방식은, 주례 선생님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생긴 것 같았는데, 저희가 그동안 경험한 결혼식에서는 주례선생님이 계시나 안계시나 여전히 신랑신부는 뒤통수만 보여주기 일쑤였고, 이걸 고수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하객 모두에게 우리 두 사람이 굳건히 서있는 정면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죠.

그 외에도 어떤 절차가 가부장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과소비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끊임없이 질문했어요. 폐백*이 도대체 뭔지 살펴보니 시댁 어른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는 거라는데, 시댁의 응원만 받아야 하는 가부장적인 절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가 어른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걸 굳이 하객들도 다 오는 결혼식에서 할 필요도 없었구요. 커플링도 이미 있었던 터라 또 돈을 들여 결혼반지를 장만하는 대신 우리 함께 앞날을 잘 걸어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운동화를 사서 교환하고, 그걸 신고 퇴장 행진도 했었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나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은 다른 방식의 결혼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신부가 혼례를 마치고 시댁에 와서 시부모를 비롯한 여러 시댁 어른들에게 드리는 첫인사.

 

2. 나의 결혼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의 풍경과 분위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면?

신랑신부 입장 행진이 기억나는데요, 저희는 신랑이 먼저 입장해 기다리고 신부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건네주는 방식 대신 각자 서로의 부모님과 함께 입장했어요. 저희가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치르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을 위해서였거든요. 부모님의 손님들에게 아들딸 자랑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드리고, 아들딸의 손님들을 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면서 우리 이렇게 사회생활 잘하고 있어요라고 안심시켜드릴 목적으로 결혼식을 굳이 하기로 결심했던 거라, 각자의 부모님과 입장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저와 부모님이 입장할 때는 아기상어'를 입장곡으로 선택했는데, 가족이 함께하는 결혼식이라는 걸 보여주기에 가장 직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엄숙한 음악이 나올 줄 알았다가 갑자기 동요가 나오니까 순간 결혼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죠.

하객분들은 신부대기실 없이 부모님 옆에서 직접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어요. 신부대기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부모님의 손님들은 신부대기실 밖에서 신부 얼굴을 빼꼼히 쳐다보고 가는 정도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서 있으니까 손님 분들과 바로바로 소개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특히 제 남자 하객분들이 좋아하셨는데, 신부대기실은 너무 여자들만을 위한 공간같아서 들어가기가 항상 민망했다고 하시더라구요. 덕분에 거의 모든 하객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던 거 같아요. 저는 바닥에 딱 끌리는 정도의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한 손으로 치마를 들면 혼자서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편이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 였어요. 반가운 사람, 보고싶었던 사람이 한가득인 자리에서 헬퍼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없고, 예식 전후로 옷을 갈아입기 위한 시간을 따로 낼 필요도 없어서 너무 좋았어요. 하객 분들은 동해번쩍 서해번쩍 움직이며 인사하고 다니는 신부 모습이 신기했다고 하더라구요.

 

3. 대안적인 결혼식을 하고자 했을 때 시행착오나 갈등을 겪은 부분이 있다면?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과의 갈등이 전혀 없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결혼식에 대해 요모조모 뜯어본 다음, 본격적으로 식을 계획하기 전에 부모님은 어떤 로망(?)을 갖고 계시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먼저 양가 부모님의 의견부터 들었었어요. 부모님께서는 따로 그런 로망이 없으셨고 정말 최소한의 당부만 해주셨어요.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른들이 오시기 편하도록 터미널이나 역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으라거나 밥은 뷔페가 아무래도 괜찮더라 정도의 피드백을 받았죠.

그래도 주변에서 처음에는 너희들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가도 이후에 그건 안된다고 하시는 부모님들 때문에 고생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지라, 중간중간 진행상황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진행하게 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드렸는데 항상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셨어요. 아무래도 절차 하나하나를 저희 관점만이 아니라 부모님 관점에서도 함께 고민해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한편, 초반에는 결혼식 준비를 정말 스스로 다 할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결혼식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안적인 결혼식은 하객으로도 경험할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혼자 준비했다가는 분명 의미는 좋아도, 볼품없는 결혼식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컸어요. 게다가 저희는 결혼식을 30분 이상 진행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일반적인 결혼식장이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진행하게 됐는데, 이런 곳은 꽃장식이나 조명, 음향 등이 잘 갖춰져있지 않거든요. 과거 다년간 축제기획을 했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아무래도 전문가가 필요하겠다 싶었죠.

전형적이지 않은 형식의 결혼식장에서 저희가 원하는 방식과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해 본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웨딩박람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웨딩플래너는 적합한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대안적인 결혼식을 직접 그리고 많이 경험해 본 곳들을 수소문해 계약을 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꽃장식 비용에 거의 준하는 정도였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결혼식을 적극 응원해주고 더 나은 대안을 제안해주는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해주셔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4. 결혼식 이후 부부 생활을 이어가면서 만들어가는 나/우리만의 실천이 있다면?

뻔한 대답이긴 한데,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을 강요하지 않아요. 저는 요리에 흥미가 없는데, 결혼 이후에는 요리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더라구요. 그래서 저희집은 신랑이 주로 요리를 담당해요. 즐겨서라기보다는 저보다는 상대적으로 요리에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죠. 반면 신랑은 정리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물건을 정말 생뚱맞은 곳에 그냥 올려둬요. 그게 자기 나름의 정리 방식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설거지와 청소는 저의 몫이구요. 기존의 남편과 아내 역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대화로 더 나은 방향을 찾은거죠.

그리고 부부가 항상 모든 걸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부부이기 이전에 우리는 각자의 일터와 생활 세계를 갖고 있는 개인이기도 하죠. 한 번은 회사에서 안식월을 받았는데, 워낙 흔치 않은 휴식기간이라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신랑은 함께 갈 수 있는 상황이 안돼서 저 혼자 다녀왔는데, 주변에서는 너무 놀라면서, 신랑이 별말 없이 허락을 해줬냐고 하더라구요. ‘허락'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니까요. 부부로서 존중하는 마음과, 부부가 아닌 개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저희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5. 나의 삶, 혹은 부부라는 관계에서 나/우리가 직접 구성한 결혼식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식은 행복한 체면치레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은 하객들에게 자식 자랑하고, 자식들은 부모님께 하객들을 소개하며 부모님 품에서 벗어난 자식 걱정하지 마시라 보여드리는 자리이죠. 그리고 더불어 신랑신부와 부모님을 중심으로 하객간의 접점을 만들수 있는 커다란 커뮤니티의 장인거죠.

실제로 결혼식장 입구에서 우리 두 사람과 양가 부모님 6명이 서 있다보니, 신랑 쪽 하객들과 인사하기도 굉장히 편했고, 신랑 신부 모두 서로의 친척분들과 사전에 뵀던터라 신랑의 친척분을 제가 직접 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 친척분과 눈이 마주쳐 양가 친척분들끼리 인사하는 자리가 생기기도 하구요. 지금까지도 아 그때 그 결혼식장에 봤던 그 분~” 하면서 얘기하기도 하고, 신랑의 대학동기와 제가 더 친해지기도 하고. 부부라는 관계가 이런 거 같아요. 내 커뮤니티의 반경이 넓어지는 것. 우리가 구상한 결혼식은 이렇게 서로의 커뮤니티 반경을 넓혀주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자리였어요.

 


푸른의 이야기

1. 보편적인 형태의 결혼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결혼식을 하고자 했던 동기나 이유는?

제가 원래 이유 없이 꼭 해야하는 일들을 재미없어 해요.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라도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야 흥미나 의욕이 생기고 또 그래야만 실제로 해요. 내가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못찾으면 일단 안하는 편인 것 같아요. 하면서 계속 의심하거든요. ‘이걸 왜 해야하지?’하고요.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는데, 예복, 식순, 입장, 폐백, 신부대기실, 축의금 문화, 결혼식에 쓰이는 언어 등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인 결혼식을 그대로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방식의 결혼식을 고민하게 됐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처럼하지 못했던 경험이 계속 반복되었는데, 그러면서 오히려 나다움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특히 여자아이답다.’, ‘여성스럽다같은 기준에 저를 맞추려고 할 때마다 어딘가 불편했어요.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았죠. 경제적으로도 언제나 주변 친구들의 기준에 맞출 형편이 안됐고요. ‘보통의 아이들’, ‘보통의 여성들이라고 여겨지는 모습을 따라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할 걸 아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나한테 뭐가 어울리는지 자꾸 생각하며 자란 것 같아요. 신부라면 여성스러움의 끝판왕이어야 하고, 화려해야하는 보통의 결혼식 모습이 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2. 나의 결혼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의 풍경과 분위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면?

저는 매 순간이 다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가장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를 꼽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우선 결혼식이 느긋했어요. 저와 신랑은 분주하긴 했지만, 꽤 많은 분들과 눈 맞추고, 반갑게 인사나눌 수 있었어요. 오신 분들은 긴 시간동안 농촌 마을에 소풍 온 기분으로 즐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데나 앉아도 되고, 일어서서 왔다갔다 해도 되고,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 나눠도 되고. 심지어 결혼식 도중에 부모님과 가족들이 모두 어디론가 흩어지고 자리에 안계셔서 당황하기도 하고, 신랑신부 동선도 아예 맞춰보지 않고 했던 터라 어색했는데 그것조차 좋았어요. 결혼식을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한 점이요. 저희 스스로 준비했기 때문에 일어난 많은 실수들이 그저 사랑스럽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두 사람에 대해 작게 전시해둔 게 있었거든요. 평소에 찍은 사진들과 서로에게 바라는 점, 부부가 반기는 선물과 사양하고 싶은 선물 목록,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은 지에 대한 마인드맵 같은 것들요. 손님들이 그걸 보시면서 저희 두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신 것 같아요.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만났고,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도 이야기 했어요.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면서 축하의 말씀을 개성있게 해주셨어요. 평소 저희를 보며 해오신 생각들도 이야기해주시고, 시를 지어 낭독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리고 하객들이 저희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도 있었고요. 저희 두 사람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는 결혼식을 통해서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앞으로 저희의 만남, 앞으로 살아갈 삶을 자세하게 축하받고 응원받은 것 같아 기뻤어요.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저희 두 사람의 입장순서에요. 결혼식 1부를 시작하며 한영애의 푸른 칵테일의 향기를 배경음악으로 트랙터를 타고 입장했는데, 못 보신 분들이 무척 아쉬워하실 만큼 많은 분들이 무척 재미있게 봐주셨어요. 제가 트랙터를 운전하고 신랑은 옆에 함께 탔어요. 농촌과 농민의 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저를 어리고 약하고 순하게만 보고 계신 이웃과 친척들게 저의 당당하고 용감하고 고집 센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2부에서는 저와 신랑이 직접 서로를 소개하고 입장했는데, 성별에 따른 역할만 강조되는 아름다운’, ‘듬직한과 같은 소개가 싫어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표현을 고민했어요. 결국 신랑은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저는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어요. 신랑은 보리를 나눠주며 입장하고, 저는 춤을 추며 입장했죠. 저희 둘 다 신랑다운’, ‘신부다운이 아니라 자기다운 모습으로 입장한 거였고, 하객들도 그런 모습을 즐겁게 봐주셨어요.

 

3. 대안적인 결혼식을 하고자 했을 때, 배우자 혹은 양가 부모님과의 갈등은 없었는지?

배우자는 저랑 거의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결정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저희 부모님은 결정된 사항을 알려드릴 때마다 물개박수 치며 좋아하셨어요. 하루는 풍물패 길놀이로 결혼식을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이미 준비중이었죠. 이렇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내면서 저희다움을 마음껏 펼쳐가길 응원해주셨어요. 신랑 부모님은 폐백과 한복, 결혼식장, 식사 대접 같은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신랑과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시는 분들이셔서 차근차근 설득했어요. 사실 충분히 설득은 안되었지만 그래도 저희 뜻대로 하도록 지켜봐주신거예요. 웨딩샵, 웨딩홀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자식들이 초라해보일까봐 걱정하신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서요. 그런데 마을 잔치처럼 결혼식이 잘 진행되어서 결혼식이 끝난 직후엔 신랑 부모님이 가장 만족해하셨어요.

 

4. 결혼식 이후 부부 생활을 이어가면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실천이 있다면?

저나 신랑이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도 해서, 하는 일이 다양하고 일정도 불규칙해요. 서로 도와주면 일상이 좀 더 짜임새있고 능률이 좋을 것 같아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희 집에 서로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서로에 대해 연구하고, 계속 알아가자는 의미에요. 매주 서로연구소 주간 회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마음도 살피고, 계획도 공유하고, 일에 대해서든 생활에 대해서든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을 의논해요.

만나고 알아간 지 오래된 사이가 아니라서 무엇이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랑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페미니즘, 교육, 서로 다른 가족의 문화, 농촌의 문화, 대화 방식, 서로 보살피는 방법들, 삶의 방식, 우리의 먹거리 등등에 대해 최대한 많이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아직 알아갈 것이 너무 많아요. 부부라는 실감도 잘 안나고요. 그래서 부부라는 관계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막막할 땐 스스로 동거하며 연애하고 있다’, ‘천천히 알아가자.’ 이렇게 생각해요.

 

5. 나의 삶, 혹은 부부라는 관계에서 나/우리가 직접 구성한 결혼식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우선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알리고, 함께하고 싶은 삶에 대해 풍성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꾸민 결혼식이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굳이 전통의 방식을 재현하지 않고도 충분히 여러 세대가 만족하고 멋지다고 생각할 만한 결혼식이 되었다는 게 큰 성과인 것 같아요. 물론 저희 부모님들이 많은 부분 믿고 따라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걸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평생의 벗과 함께 이뤄냈다는 게 뿌듯해요.

당사자인 우리 역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가족으로 묶이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인지 구체하게, 책임감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었고요. 먹거리, , 출산, 살림살이 등 우리 삶의 많은 일들을 전문가나 최첨단 서비스 상품의 도움없이 스스로 해결해나가고 싶은데 (아주 느린 속도로 가능해질지라도요.) 결혼식은 그런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연습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해나가야 할 일 중에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한편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성과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결혼에 대한 대안적 실천의 구체적인 모양들은 하나로만, 한 방향으로만 고정될 수 없을 것이다.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김규진은,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어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전형적인 공장식 결혼을 치르면서 발생하는 전복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레즈비언들 중 결혼을 한 사람들은 있지만, 공장형 웨딩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첫째로 하객이 많지 않고, 둘째로 예산이 적어서겠죠. 왜냐하면 부모님 펀딩을 받지 못하니까. 게다가 부모님의 친구들이 와야 결혼식 비용이 또이또이가 될 텐데 그들도 안 오고요. 셋째로는 웨딩홀이 거절할까봐 망설인 것도 있겠죠. 이 세 가지 이유를 보니까 좀 재밌어지는 거예요. 도전 정신이 들고요. 처음에는 좀 긴장했어요. 웨딩 업체에서 거절당할까봐요. 만약 거절당한다면 그건 그 업체의 자본주의적 결정이니까, 굳이 그 거절에 집중해서 마음 상하지는 말자고 와이프랑 미리 얘기했죠. 그런데 그걸 하나 하나 깨면서 나아가니까 엄청 큰 쾌감을 느꼈어요. 점점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를 하게 되었죠.”

일간 이슬아 한여름호 [2020.09.01. 火 : 일과 사랑의 천재 – 김규진X이슬아]

하나의 판본처럼 반복되는 이른바 공장형 웨딩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진부한 무엇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어 들어가는 것은 마치 물흐르듯 진행되는 과정으로, 혹은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갑갑한 틀 정도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견고한 정상성 앞에서 불화하며 균열을 발견해야하는 이들이 해내어보이는 전형성은 그런 정상성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해가야할 것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랑을 하고 누군가와 보다 먼 미래를 약속하는 데에 있어 우리가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실천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실천을 엿보다보면 마치 시장에서 한가득 장을 보아온 듯 우리의 결혼식,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새로운 시도를 향한 마음들이 넘실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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