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앞에서 너무 많은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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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패션을 즐기는 교섬입니다. 저는 그날의 기분에 맞춰 옷을 입고 외출을 하는 것, 옷을 구경하면서 새로운 미감을 접하는 것을 즐깁니다. 패션은 이렇듯 제 삶의 낙이지만서도 온전히 즐기기는 힘든 무언가였습니다. 어떤 옷들은 내가 입으면 안 될 것 같다거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예고 없이 저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 근원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생각들은 오랫동안 저를 옭아맸습니다.

패션에 관해 지나온 고민들을 에세이에 담으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정돈된 언어로 담담히 회고하기에 그 생각들은 너무 복잡하고 꺼내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일관된 관점으로 말해지기엔 겹겹의 의식들이 작용했고, 그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어쩌면 나 개인의 피해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저 에세이 못 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하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런 심경을 몇몇의 지인들에게 토로했더니 놀랍게도 그들은 저의 꼬인 생각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나 개인의 열등감이 아니라 여럿이 공유하는 감정이라면, 그걸 만드는 어떤 사회적인 힘이 있지 않을까? 그런 감정을 남과 얘기하긴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음모론(?)을 품고서요.

분열된 의식을 그대로 적어내기로 했습니다. 여러 겹의 의식들을 각기 다른 자아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의 에세이를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잡지 사소가 지향하는, 사소해 보이지만 큰 파열을 일으키는 일상을 잘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이 여러 자아들은 자전적이면서도 과장되거나 허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명시함으로써 제가 고백한 (어쩌면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일지도 모르는) 부끄러운 감정으로부터 저를 조금이나마 보호하고자 합니다. 그런 작고 섬세한 자아의 파편 속에서 무엇이 진짜 저인지 분간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에세이에 쓰인 것이 실제 저와는 다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면 보다 솔직하게 여러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의식에 경계를 지을 수는 없지만, 임의적으로 네 명의 자아로 구획했습니다. 네 명의 자아는 마치 서로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의문을 던지고 반박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대화합니다. 저의 네 자아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A. 옷장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자아. 주로 해석이 배제된 현상, 기억 자체를 이야기한다.

B. A의 말을 듣고 이차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자아. 대부분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의 기억을 해석한다.

C. 역시 기억의 해석에 초점을 두지만 B와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자아.

D. C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논의를 심화시키는 자아.

 

이제 이 넷을 만나보세요. 이들의 대화를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덧붙여주셔도 좋습니다.


핑크가 싫었다. 내 옷장은 온통 핑크였지만

 

A. 에세이를 쓰려고 제 옷장의 역사, 옷장이 어떻게 채워져 왔나를 돌이켜보았는데, 어릴 때 제 옷장은 거의 핑크로 채워져 있었어요. 저한테 남자인 쌍둥이 동생이 있거든요. 항상 똑같은 디자인인데 색만 다르게 입혔어요. 걔는 파란색, 저는 핑크색. 옷장 딱 열면 걔 옷장 안은 파란색, 제 옷장 안은 핑크색.

B.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저와 동생을 구분하기 위해 다른 색 옷을 입힌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하필 성별의 차이가 선택되었다는 게 좀 소름이죠. 저희 둘을 구분하려면 활용할 수 있는 특징들이 성별 말고도 많았는데. 예를 들어 첫째인 저는 초록색, 둘째인 동생은 노란색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늘색 좋아하는 저는 하늘색, 빨간색 좋아하는 동생은 빨간색, 이렇게 입힐 수도 있었는데. 하필 가장 눈에 띄는 차이가 성별이었던 거죠. 성별이 그렇게까지 두드러지는 특징이 될 필요는 없었는데. 성별이라는 게 너무 절대적인 기준이고 너무 많은 걸 결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A. 그래서인지 저는 핑크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어요. 그 거부감이 좀 어떤 느낌이냐면, 눈이 핑크를 알아서 피하는 거예요. 핑크엔 정이 안 가. 여덟 살 때 슈가슈가 룬이나 캐릭캐릭 체인지 같은 만화영화에서도 저는 항상 핑크색 캐릭터 말고 다른 캐릭터를 좋아했고요. 물건을 고를 기회가 있을 때도 늘 핑크를 피해서 노랑이나 초록, 파랑을 골랐던 기억이 있어요.

C. 또 그러면서 핑크를 싫어하는 척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거든요? 학용품 하나를 살 때에도 핑크 말고 다른 색을 사려고 하면 은근한 압박을 받았던 것 같아요. , 그냥 저 혼자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한데, 여성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 느낌. ‘넌 여자인데 왜 핑크를 싫어해?’ ‘남자야?’ 그래서 핑크색 말고 다른 색을 선택할 때면 항상 어떤 핑계를 붙였어요.

 

B. 저는 제가 핑크를 입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핑크는 여자애들의 색이라는 인식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핑크를 입는다는 게 핑크=여자애라는 걸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아주 유치하고 성 평등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생 때도 핑크로 된 물건을 의식적으로 안 샀어요. 핑크는 여성성, 여성스러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저한테 핑크에 대한 거부는 여성성에 대한 거부,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 같은 거였어요. 핑크를 그냥 색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다시 입을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 동안 인식의 변화와 여러 번의 흔들림이 필요했어요.

 

여성스러운 옷이 꺼려졌다

 

A. 중학생 때 쯤 입을 옷을 직접 고르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때도 핑크에 대한 거부감은 한결 같았고, 파스텔톤, 쉬폰 레이스 프릴, 블라우스, 원피스, 신체부위 노출이 있는 옷들도 거부했어요. ‘여성스럽다고 불릴만한 특징이 있는 옷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죠. 그런 옷들을 거부한 이유가 너무 복합적이어서.. 지금 좀 머리가 아픈데, 떠오르는 여러 결의 생각들을 적어볼게요.

B. 저한테는 그런 특징의 옷들이 핑크랑 마찬가지로 젠더 고정관념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거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그런 여성스러운옷을 입고 말고의 기준은, 내가 그런 옷을 좋아하느냐, 내가 그 옷이 마음에 드느냐 하는 취향의 문제보다도 훨씬 앞서서 존재했던 거예요. 그런 옷을 입으면 나는 젠더 고정관념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페미니즘이나 탈코르셋 같은 건 하나도 몰랐는데도 그냥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었어요.

 

C. 저는 B와는 좀 다른 생각인데. 저는 그것보다도 그런 여성스러운옷을 입는다는 게 연애 상대로 봐지길 원하는 상태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매체에서 본 여자들의 데이트룩이 항상 그런 느낌이었던 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D. 맞아, 근데 그런 스타일이 데이트룩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입었을 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있어?”라는 말을 몇 번 들었거든요.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 여성적임을 강조하는 것, 그 여성적임 자체가 연애 상대로서 어필하는 걸로 여겨졌던 거죠.

A. 실제로 학교에서 다 같이 영화 보러 갈 때 원피스를 입었는데 친구한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있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이후부터 더 그런 스타일에 손이 안 가더라고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편인데,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건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거나 연애 상대를 구한다고 써 붙여놓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상황들을 거치며 여성스러운옷은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꺼려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내 선택지에서 항상 제외되곤 했어요.

C. 갑자기 든 생각인데, A는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다는 걸 굉장히 적극적인 욕망의 표현으로 해석했던 거네요!

A. ,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새롭다!

B. 저는 반대로 생각했는데!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게 오히려 남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남자들을 위해 내 옷차림을 조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라는 생각까지도 했던 것 같아요.

 

A. 그런 고민들을 거쳐서 고등학교 무렵의 제가 찾은 해답은 스트릿룩이었어요. 내추럴하고 살랑이는 여성스러운느낌보다 보다 강렬한 느낌의 스트릿룩이 보다 중성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카멜색 멜빵바지나 원색의 옷들, 통 넓은 바지,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즐겨 입었습니다. 그렇게 입고 나가면 스스로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B. 그렇게 스트릿룩을 입고 나갈 때 여성스러운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난 젠더 고정관념에 덜 함몰되었고, 거기서 벗어나서 나만의 패션을 추구한다는 식의 우월감도 있었고. 내 패션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대로 입은 수동적인 게 아니라, 내 소신의 표현이며 당당한 나만의 모습이다, 라는 식의.. 생각도 있었던 것 같네요.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사람들과 저를 구별 짓기 하면서 우월감을 느꼈었어요. 진짜 이상하다. 저 너무 꼬였었네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A. 2때 한창 옷을 좋아해서 인터넷으로 구경을 엄청 많이 했어요. 여러 옷들을 보다 보니 취향이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여성스러운옷들을 제가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처음엔 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어요. 내 취향이 사회적으로 주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그때 탈코르셋 운동도 접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 취향에 대해 왠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B. 어느 순간, 그럼 어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어떤 옷들을 여성스럽다고 분류된 옷들을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내 옷장에서 배제하는 것 자체가 젠더이분법에 기초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어떤 옷은 남성스럽다 어떤 옷은 여성스럽다 하는 분류를 깨버리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옷을 고를 때 남성적/여성적이라고 분류하는 걸 그만하기로 했어요.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거예요.

C.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아직 확신은 없을 무렵, 눈 한 번 딱 감고 여름용 꽃무늬 쉬폰 원피스를 사봤어요. 꽃무늬에, 쉬폰에, 원피스, ‘여성스럽다는 특징들로 범벅된 옷인데 제가 이 원피스를 입으면서 느낀 건 뭐냐면, 단순히 여성스럽다라고만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효용이 많은 옷이라는 거예요. 바람 불 때 쉬폰 소재가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원피스 자체도 여름에 입으면 정말 시원하고, 코디 걱정 없이 하나만 딱 입으면 되니까 되게 편하고. 뿐만 아니라, 여성스럽다고 생각해서 거부했던 다른 옷들도, 단순히 여성스럽다라고 분류되어 배제되기엔 각각의 효용이 있는 옷들이었어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바람이 시원해질 때 롱스커트를 입으면 바람이 다리 사이로 들어와 간질이는 느낌, 치맛자락이 나풀거리는 느낌도 좋고요. 핑크색에도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그게 되게 예쁘더라고요. 이런 느낌들을, 내 취향이 주입되었을 가능성만으로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성별에 상관없이 이런 즐거움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A. 이 에세이를 쓰는 저는 연한 인디핑크색 티셔츠와 분홍색 땡땡이 파자마 바지를 입고 있어요. 어제는 회색 후드에 청바지를 입고 친구를 만났고. 그저께는 하얀 니트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귀찮아서 화장은 거의 안 하고, 가끔 하고 싶은 날 하고 싶은 만큼 삘 받는 대로 화장을 해요. 옷에 여성적/남성적이라는 분류를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요. 항상 화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옷만 입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하루는 풀메이크업을 했다가 다른 날은 쌩얼로 등장하는 것도 나름의 방식대로 전형적 여성상을 깨뜨리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이제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고, 패션을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B. 그러나 여전히 패션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어요. 패션의 기준은 키 크고 마른 사람들인 것 같고, 제가 바닥에 끌리지 않고 조이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옷은 한정적이니까요. 게다가 길을 지나며 저는 비싸서 포기했던 옷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하면 상대적 박탈감이랄까요, 돈의 감각을 헤아리게 되기도 해요.

C. 여전히 패션은 겹겹의 의식들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럼에도 한결 자유로움을 느껴요. 이상적인 체형이라야만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주저했었던 옷을 입을 때마다 어쩌라고. 내가 입고 싶은 옷 입겠다는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되뇌고 거리를 걸을 때 괜스레 좀 더 당당한 발걸음을 연출해보기도 해요. 거울을 보면서는 모델과는 다른 핏이지만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 있는 핏일 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습니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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