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와 우정, 이성애 규범 공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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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종종 그 관계의 모양에 연애와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이성애규범은 그러한 실천들에 몹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성애 연애 각본을 따르지 않으려 고민하고 때론 규범과 협상하며, 아예 그 틀을 훌쩍 뛰어넘어 연애가 아닌 나만의 관계성을 만들어나가기도 합니다. 주체적인 성적 교섭을 통해 내 욕망을 찾아가거나 연애로 규정지으려는 외부의 시선을 부단히 경계하면서 친구를 향한 내 행동을 부러 조심하고, 연애와 사랑에 대한 무수한 말들 속에서 사랑이란 대체 뭔지 고민하는 것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행위성을 발휘하며 이성애규범과 연애 및 우정의 공존기를 써내려온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그 세세한 결들을 나누려 모였습니다.

 

이야기하는 이들: , 밀크티, 세모, 김물, 도비

 

Q. 연애나 사랑과 관련해 사회적인 규범을 느낀 적이 있나요?

김물: 요즘엔 연애라는 관계에 사회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저는 연애를 넓은 의미의 우정이면서, 좀 더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근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가 일주일에 몇 번씩 봐야한다거나 연락을 하는 게 마치 의무처럼 부과되고 그것 때문에 상대와 자주 싸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이성인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상대가) 질투를 많이 하는데, 나의 관계에도 다양한 결들이 있잖아요. 정치적인 얘기는 얘랑 하고 싶고, 예술적인 얘기는 얘랑 하고 싶고 이런 게 있는데 (상대는) 그 모든 걸 자신과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사회가 연애라는 관계에 설렘, 우정, 부모처럼 돌봐주고별걸 다 우겨넣어서 내가 이 사람한테 해줘야하는 게 갑자기 너무 많아지는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연애 관계와는 다르다.

도비: 저도 김물처럼 사회가 연애 관계에 너무 많은 걸 바란다는 것에 동의하거든요. 저는 모쏠인데요, 그동안 연애를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내가 누군가에게 끌림을 느끼는데 그렇다고 해서 연애 관계에 기대되는 일들을 하기는 싫었어요. ‘나는 쟤랑 막 엄청 자주 보고싶지는 않은데, 내가 연애를 시작해도 될까?’, ‘이건 사랑이 맞을까?’ 이런 식으로 연애 관계에 요구되는 수많은 것들까지 하고 싶진 않았을 때 오히려 내 감정까지 의심하게 됐던 것 같아요.

세모: 저는 에이로맨틱이에요. 에이로맨틱은 연애 끌림이 없는 걸 말해요. 그렇게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순서로 치면, 고등학교 때 연애를 했는데 너무 귀찮은 거예요. 원래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그 관계를 연애라고 규정을 짓고 나서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았어요. 친구일 때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귀찮으면. 근데 연애에서는 해야하는 게 되버리니까 그거에 질려서 거의 한 일주일 만에 접었거든요?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렇네'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대학와서 친구랑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연애를 하고 싶대요. 그래서 제가 '? 한강에 가면 좋을 거 같긴 한데 애인이랑 꼭 가야하는 이유는 뭐야?' 물어봤는데, 그런 게 있대요, 뭔가 다른 게 있대요. 그거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가, 제가 지난 연애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걔네랑 한강에 갔으면, 지금 친구랑 한강에 가는 거랑 달랐을까?' 생각해보니까 똑같을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난 그냥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 연애감정은 잘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러고 나니까 고등학교 때 걔가 떠오르더라구요. 그 친구는 내 정체화 과정의 피해자였구나, 미안하다. 당시에도 연애에 대한 압력을 느꼈고, 그 경험이 나중에 가서 재작년 쯤에 ', 내가 이런 사람이어서 그때 그랬고, 그때 그랬구나' 이렇게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밀크티: 대학에 오고 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잠재적인 연애 대상이 되는 게 싫었어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최선을 다해 알려줘야되고, 그걸 안 알려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버리는 거죠. 좀 아이러니컬한 게, 제가 있었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은 연애하면 안되지라는 게 있어서 어쨌든 잠재적 연애대상이 되지는 않았거든요. 그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한편으로는 저의 방어기제가 되어줬는데 대학에 오면 반대로 상대방을 당연하게 연애 대상자로 여긴다고 느꼈어요.

: 저는 연인 관계에 놓여있는 남녀의 심리나 행동을 젠더적인 통념을 엄청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현하는 컨텐츠들이 연애에 대한 특정한 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이든 다 너무 다르고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형태를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데, 유독 연애에 대해서는 남자는 이러저러하고 여자의 이 행동은 이렇게 해석해야 되고, 이런 류의 말들이 많잖아요. 이를테면, 여성은 굉장히 히스테리컬하고 사소한 걸 중요시한다, 근데 또 그런 부분은 남성이 맞춰줘야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연애에 대한 상이나 각본을 단순화한다고 느꼈어요.

김물: 현 말을 듣고 생각난 건데, 연애 관계를 시작하면 익숙하지 않았던 관계의 양식을 사회적으로 주입받는 느낌이에요. 만남의 횟수, 만남의 형태, 시간, 저녁에 만나서 밥 먹고 영화보고, 그러다 보니까 어떤 관계의 고유한 모습을 찾아가는 연습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 연애에 있어서 그 관계를 규정짓는 상상력이 너무 빈곤한 것 같다고 말하셨는데, 공감이 돼요. 비단 연애 관계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그런 상상력이 부족하고, 권력이라고 하는 게 엄청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시킬 수 있고, 강제할 수 있는 힘이라면, 많은 관계들 안에서 권력이 일방적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모: 연애 관계라고 말하면 특정한 상을 다같이 상상해야하는 것도 있는데, 반대로 또 연애 관계가 아닌데 그냥 친할 수 있잖아요. 친해서 맨날 만나고 같이 영화나 공연 보러가고. 근데, 특히 성별이 다른 경우에 더 심한데, 내가 얘랑 되게 친해가지고 맨날 만난다, 이러면 높은 확률로 누가 저한테 물어보죠. ‘너 걔랑 사겨?’ 아니, 안 사귄다고. 이런 게 반대로 심한 것 같아요. 연애에 대한 상상력을 못 넓히는 만큼 다른 관계에서도, 그런 형태가 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거죠.

 

Q. 나의 경험 중 연애에 대한 사회적인 규범과 일치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나요?

밀크티: 매체를 보면 여자들은 조그만한 거를 마음 속에 쌓아두다가 나중에 폭발하고, 그래서 남자가 처음부터 그런 자잘한 걸 잘 캐치해줘야한다, 그런 말들이 되게 많은데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여자든 남자든,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요? (웃음) 그래서 연애를 할 때 규칙을 세웠던 것 중 하나는 서로 요구하고 싶거나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바로 그날 말을 하고 서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합의점을 찾자는 거였어요.

: 저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거나 다른 이성을 만날 때 허락을 구하는 걸 안하려고 했었어요. 자잘한 기념일들을 챙기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구요. 여자는 연애에서 비합리적으로 군다는 그런 얘기도 싫어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최대한 이야기를 통해 해결하려 했어요. 근데 그런 의식적인 노력이 딱히 건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흔히 하는 연애의 방식이 훨씬 익숙하고 또 좋았던 거죠. 연락을 아주 자세히 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거나, 번거로워도 꼭 데려다주고 아무때나 보러오라고 하거나 뭐 그런 것들. 근데 그걸 원하는 내 마음까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합의를 통해 구체적인 규칙을 맞춰간 게 아니라 그냥 암묵적으로 기존의 것들을 거부하는 식으로 관계에 임하게 됐어요. 그래서 나에게 있어 그 연애의 의미까지 희미해진 것 같아요.

세모: 최근에 나에게 있어 정상 연애를 극복한다는 건, 연애하지 않는 나를 계속 정당화하는 거였거든요. 압박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친구들과는 얘기를 다 끝내서 제 주변에 연애하라는 얘기를 하는 친구는 거의 없는데,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 이제 추석 갔다왔잖아요, 난리나죠. 저는 물론 어리지만 엄청 어린 나이도 아니기 때문에, (연애를 왜 안 하냐고) 아주 난리가 납니다. 근데 결국 넘어가는 법만 계속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아아아~, 알겠어’, ‘~ 열심히 할게, 홧팅!’ 막 이러면서. 근데 오랫동안 이래야 될 것같다는 감각은 있어요. 아빠가 되게 납득한 척해요, 연애 안하고 결혼 안할거다 이러면 납득한 척하다가 한 달 있다 물어봐요, ‘너 남자친구 없냐?’ 제 생각에는 계속 이래야 할 것 같아요, 30대 중반까지는 이래야하지 않을까요. 각오하고 있어요. 계속 이렇게 조금 피곤하게 사는 것을.

도비: 주로 매체에서는 연애나 사랑에 대해, 엄청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라든지, 그러면서 섹슈얼한 끌림도 느끼고, 또 진짜 서로만이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특정한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데 있어 당연히 서로 다른 부분을 맞춰나가는 게 필요한데 연애 관계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만 보다보니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연애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연애를 해보면 그런 걸 배울 수도 있겠지만 시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워서? 정상연애가 내 삶에는 그렇게 영향을 주었고,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아서 연애를 안 하고 있다.

: 근데 저는 여전히 그 환상을 좇고 싶어요. 정말 소울메이트가 있을 거라는 그런 환상을 아직은 갖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연인으로 추정하게 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으니까 너무 흔한 거예요. 저 사람들이 전부 무슨 필연적인 끌림에 의해 짠 하고 만난 게 아니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떤 약간의 우연성과 개연성이 겹쳐져서 만난 거고, 사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다 나랑 어느정도 사는 지역, 계급적 위치, 관심사 이런 것들이 유사해서 만나게 된, 예측가능하게 구획된 범주에서 만난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양면적인 생각에서 왔다갔다 하는 거죠, 환상이 포기할 수 없다가도 사실 연애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Q. 나의 경험 중 그러한 규범에서 벗어난다고 느끼지 않았던 순간이 있나요?

밀크티: 속된 말로 남친이라고 하는데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든든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바도 있고. 그런 게 기사도 담론 같아서 별로긴 한데 한편으로는 저도 제 애인을 그렇게, 든든하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런 제 감정에 대해 가끔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또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고, 그래서 복잡해요.

: 저는 중학교 시절 연애가 그 전형을 빼다박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당시에는 연애라고 하는 게 비단, 좋아한다는 감정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 끼는 데 필수적인 요소 같은 거였고 이미 각본이 다 정해져 있어요. 그때, 페북은 친구만 돼도 피드에 뜨잖아요, 댓글 남기면 계속 올라오고. 나랑 사귀는 남자애가 딴 여자애랑 친구가 됐어, 그럼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걸로 걔랑 엄청 싸우고 친구들도 막 동조해줘요, 너 그거 봤어? 이러면서. 연락은 잠시라도 안되면 안되고, 시험 날에는 반드시 서로 반 앞에 가서 초콜릿을 줘야 돼. 물론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그런 각본 이외의 다른 방식은 알지도 못했으니까 거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중학교 때 학원을 같이 댕겼던 남자애랑도 참 열심히 잘 놀았거든요. 학원 끝나면 걔가 집 데려다주고 노래방 가고, 손잡고 뭐 그런. 2014년인가 다비치의 <두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나는 사랑이 아닌 사랑들을 해요.’ 이런 건데.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나요. 얘랑 노는 건 이런 면에서 괜찮고, 또 쟤랑 놀면 이런 점이 좋고, 결국 둘이 있으면 가장 안정적인 거 같다, 하나를 놓기가 싫은 거에요. 그때는 폴리아모리 이런 말이 없었고, 사실 있었다한들 몰랐겠죠. 그래서 어떤 규범이라고 하는 게 어릴 때부터 강력하게 작동하는 거 같다가도 오히려 그 틈새에서, 규범을 훌쩍 뛰어넘는 실천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물: 저는 정상연애 규범을 따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걸 최대한 상대방한테 어필하는 편이었어요. 근데 한편으로, 제가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엄청 오래 자라고 거기에서 사회화가 돼서 섹슈얼한 관계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아직 심하거든요. 최근에 한 연애에서는 그런 스킨십과 관계를 원한다는 직간접적인 요구나 압박을 많이 받아서 제가 제 감정이나 상태, 욕구를 스스로 파악하고 또 상대와 대화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로 그냥 흘러가버린 경우가 있었고 그 시간이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Q. 친구 관계나 우정에 대한 사회적인 규범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세모: 오히려 저는 연애나 사랑과 우정이 달라야 한다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떻게 달라야 하는 거지? ‘좋아한다는 말도 되게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잖아요. 제 친구랑 저랑 진짜 좋아하는데 그 감정을 서로 우정이라고 인식해요. 그니까 이게 엄청 어려운 거죠. 저는 정이 많은 편이라서, 친한 친구가 아프면 걱정되고 죽 기프티콘 보내주고, 더 친하면 죽 사가지고 갈 수도 있고. 근데 그런 게 반복되면 모두가 연애하는 사이 같다라고 말해요. 우정 자체가 어떤 형태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기보다는 사랑과 우정은 달라야 하는데 우정이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을 자꾸 침범할 때, ‘어 이거 아닌데라는 압력이 있다고 느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밀크티: 저는 남자의 우정과 여자의 우정이 다르다고 하는 규범을 많이 느꼈어요. 남성의 우정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많잖아요.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예를 들면 영화판에서 브로맨스물이 점점 많아지는데, 저는 그게 한편으론 (브로맨스 또한 여성들이 주 소비자인 BL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여성이 연애라는 모델을 새롭게 향유하는 문화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남성의 우정이란 판타지를 비틀린 방식으로 다시 소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좀 있어서, 그런 게 고민이 많이 돼요. 그리고 인스타에 여자남자 우정 비교짤이런 게 많아요. 여자들의 우정 사진에는 파티룸 가서 찍은 사진이 있고. 남자들의 우정 사진에는 엄청 못 찍은 단체 셀카. 마치 남성의 우정이 여성의 우정보다 더 진실되고, 진국이고, 솔직한 것처럼 그려지는 그런 이미지들을 볼 때마다, 과연 그런가, 대체 뭐가 다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도비: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 이성이냐 동성이냐에 따라서 엄청 사소한 것까지 다른 규범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이성인 친구를 부를 때는 무조건 성까지 같이 불러야 해요. 남자애를 부르는데 누구야이렇게 부르면 헐 쟤네 뭐야막 이러고. 저는 지방에서 자랐는데 서울식 어미를 사용하면 어 쟤네 뭐야또 그러고. 무조건 남자애들한테 얘기할 때는 ’, ‘’, ‘니 이거 했나?’ 이런 식으로 엄청 쌀쌀 맞고 시크하게? 얘기해야 하는 규범이 있었어요. 반면에 여자인 친구들 중에서 별로 안 친한, 클래스메이트 정도의 친구면 엄청 친절하게 대해줘야 해요. 그런데 또 되게 가까운 친구한테는 너무 친절하면 안 돼요. 약간 틱틱대야 하고 성을 붙여서 불러야 해요. 가끔 여자애들끼리 그런 것도 있었어요. ‘나는 너를 성 붙여서 부르는데 왜 너는 날 그냥 이름만 불러? 넌 날 그렇게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세모: 근데 결국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 볼 수 있냐 없냐의 문제인 거잖아요. 저는 스킨십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여자애들이랑 있으면 맨날 쓰다듬고 볼 꼬집고 이런단 말이에요. 물론 싫어하면 안 그러지만. 하지만 헤테로 남자애들한테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베스트 프렌드여도. 또 시국이 시국이라서 사람을 못 만나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친구들한테 그런 표현을 잘 하는 편이라서 인스타 스토리 보다가 디엠으로 보고싶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헤테로 남자인 친구들한텐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보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 보고 싶어만 하는 친구가 한 두 명 있습니다. 근데 이게 우리는 충분히 친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아요. 서로를 연애 대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아는데 어쨌든 걔가 헤테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저도 자제하면서도 되게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단지 성별이 그렇다는 이유로 신경이 쓰이는 건 왤까 싶어요. 이건 진짜 어떤 압력이 있는 거니까.

밀크티: 성별이 뭐든간에 연애를 할 사이가 아닌데 정말 가까우면 그 관계는 연애를 할 때의 행위 양식과는 달라야 한다는 규범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친한 소위 여자 친구들과는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의 우정보다도 훨씬 더 남성화된 방식으로 소통하거든요. 그게 저한테도 좀 편하기도 하고. 그리고 경상도 특일 수도 있는데 조금만 오글거린다? 그럼 바로 나가리. 왜냐면 경상도에서는 여성적인 것이 가장 밑에 있는 문화니까. 그래서 서울 와서 친구사귈 때 그런 문화적 차이들 때문에 좀 어색했어요. 그리고 여성들은 친해질수록 상냥함을 덜어가는 거 같아요. 대체 왜 그럴까요? 연애는 가까워질수록, 물론 서로 조금 틱틱대는 건 있지만, 어쨌든 상냥함이나 밀착감이 오히려 더 늘어나잖아요. 근데 우정은 그래서는 안 되고, 연애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는 규범이 저한테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감을 좀 많이 했어요.

김물: 남자인 친구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친구라는 걸 증명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었어요. 예를 들면 내가 너희를 편한 친구로 대한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서 엄청 거친 말들을 많이 한다거나. 그러다가 다른 사람한테 너는 결혼은 쟤들 중에 한 명이랑 할 거다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 후에 제 감정과 행동을 검열했던 것 같아요. 얘네들이랑 친하지만 애인으로는 발전하지 않을 이유를 몇 개씩 찾아서 목록을 계속 만드는 거죠. ‘얘는 뭐가 마음에 안 드니까, 얘는 이런 생각을 잘 안 하니까이런 걸 계속 상기시켰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여행을 간다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부모님들이 계속 같이 못하게 하셔서 친구들이랑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걔네가 가끔 너무 힘들어하면 안아주고 싶은데, 10년 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졸업할 때 한 번 안아본 게 전부고, 그런 것들이 두고 두고 한처럼 남는 것 같아요. 우린 이것밖에 못 하나, 이정도인가 하고요.

: 제가 우연한 계기로 친해진 친구가 있어요. 그 아이와의 시간들이 저한텐 되게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좋아하는데 또 동경하기도 하고 잘 보이고 싶고 뭔가 떨리기도 하고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져다주는 친구였어요. 만약에 걔의 성별이 이른바 남자였다면 이런 감정을 연애 감정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 제가 그렇게까지 밀고 가진 않는 거예요. 그 친구와의 관계가, 내가 지금 맺고 있는 것들 중에 나한테 가장 특별한데도 그 '좋아한다'라는 감정으로는 의미화되지 않아서 연애와 연애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건 대체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Q. 연애나 우정으로 쉽사리 규정짓기 어려웠던 관계가 있나요?

도비: 제가 동아리를 하는데, 어떤 친구 한 명이 유독 조용했어요. 저는 걔가 궁금했는데, 그 궁금함이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은, 우정과 관련된 감정인지 아니면 걔를 좋아하는 건지 항상 헷갈렸거든요. 정말 내 감정을 모르겠었던 관계였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걔가 여자애였으면 분명 내가 쟤랑 친해지고 싶은데 쟤가 말이 없어서 궁금한 거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하필 남자애였던 거죠. 그 애에 대한 감정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연애 감정이란 뭘까, 좋아한다는 건 무엇이 되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제가 약간 특이한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니까 뭔가 그 독특한 게 있으면 다가가고 싶어요. , 저 사람 너무 궁금하다. 근데 그 사람이 남성일 경우에, 서로 알고 지내면 대체로 그 귀결이 연애가 되고, 연애가 뭐 그렇게 오래가진 않으니까 그 사람과의 관계 자체도 끝나는 경험들이 많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굳이 연애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텐데.

세모: 그게 스스로 컨트롤이 잘 안 된다는 게 억울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남자면. 나는 그냥 친해지고 싶은데 그 귀결이 어떻게 될지 내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거죠. 왜냐면 보통 상대방이 흔히 말해서 오해를 해요. 그럼 그 관계가 연애가 되든 흐지부지되든간에 결국 끝나는 건 똑같잖아요. 내가 뜻한 건 그게 아닌데, 나는 그걸 피한다고 피했는데. 그래서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Q. 관계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 나아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들려주세요.

세모: 전 요즘 완전 열어두고 있어요. 나는 로맨틱 끌림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체화하고 나니까 그냥 좀 가벼워지는 거 같아요. 연애라는 관계가, 거기에 따라오는 압력도 많고 해야할 고민도 많은데, 연애를 안한다고 정체화하니까 모든 친밀한 관계들을 그냥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로 퉁쳐버릴 수 있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되게 편해요.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 (웃음) 다만 이제 바라는 건, 나이를 먹었을 때 너무 외롭지 않아야 할텐데 뭐 그 정도?

김물: 오래 살수록 가족 외엔 인간관계가 희미해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답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가족의 장점은, 그것이 동시에 억압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진 틀이 있고, 그것이 그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이 되잖아요. 그런 추동력 없이 내가 친구관계를 (가족처럼) 노년까지 이어가는 건 정말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연애와 사랑은, 아까 말했듯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프렌드쉽인 거 같아요. 사실 관계 맺기는,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족속이 조금이라도 그 외로움을 잊기 위해 만들고 몇 백년 간 유지해온 방법인 거 같아요. 그래서 특정한 관계가 반드시 나쁘다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건강하게 이어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비: 저는 사랑이라는 범주를 더 넓게 생각하거든요. 굳이 섹슈얼한 끌림을 느끼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관계라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친구 관계에서는 서로 사랑해라고 얘기하기도 하잖아요. 사랑이라는 스펙트럼 하에서,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우정부터 연애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우정도 충분히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비혼비출산을 추구해서 나중에 저랑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랑 쉐어하우스 같은 곳에서 같이 살고싶은 생각이 있어요. 혼자 살면 너무 외로울 거 같을 거 같아서요. 그런 관계와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요.

: 저는 서로 간에 형성되는 항상성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같이 사는 사람일 경우 별거 아니더라도 제가 밤에 안 들어오면 전화와서 너 왜 안 들어와?’ 이렇게 물어봐줄 수 있잖아요. 상대방이 나의 아주 다양한 순간들을 핍진하게 알고 있고, 그래서 나의 상태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중요해요. 저는 그런 항상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어요. 또 표현을 많이 하는 것,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말고, 말을 구체적으로 많이 하는 관계였으면 좋겠어요. 그 관계에 어떤 이름이 붙든 간에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 저도 더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겠죠.

세모: 덧붙이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어떤 관계가 좋은 관계이려면, 서로 선의로 해석하는 게 바탕이 되야할 것 같아요. 나도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선의로서 받아들이고 상대도 그러리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사실 관계에서 솔직해지기 두려운 순간들은, 내가 뭘 잘못할까봐, 상처를 줄까봐, 저 사람이 보기에 모자라보이는 말을 할까봐 그런 순간들인데, 내가 이상한 말을 해도 쟤가 예쁘게 받아들여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밀크티: 저는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여성주의자로서의 관계가 정형화되어 그려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요. 예를 들면, ‘21세기 페미니스트면 비혼해야지이런 식으로 내가 맺을 관계를 단정하는 구호들? 멋있기는 한데, 저는 별로 멋있어지고 싶지 않거든요. (웃음) 제가 삐딱해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저는 저런 구호들이 다시 한 번 여성의 관계를 좁혀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조선시대 신여성의 모습, 이런 것처럼 나중에 2020년 신여성의 모습, 이런 식으로 굳어지지는 않을까, 그런 거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연애, 제가 앞으로 거칠 사회적 의례, 특히나 결혼에 대해서 오히려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요. 여성주의자라고 해서 내 연애를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연애는 저에게 굉장히 소중하고, 인생에서 중요했던 계기이기도 하거든요. 여성주의 담론에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등한시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고 이렇게 여성들이 관계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걸 같이 나눠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 우리가 어떤 관계에 대한 재현물이나 떠도는 담론 같은 걸 참조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실제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 이야기 말고,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훨씬 다양하고,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부분들까지 충분히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관계에 있어서 덜 관성적이려고 노력해야겠죠.

세모: 덜 관성적이어야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저는 선택의 이유를 다들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애를 하기로 하건 안 하기로 하건, 뭐 연애를 어떻게 하건 간에. 사실 관성적일 수도 있잖아요. 어떨 땐 정상연애 롤플레잉이 좋고 재밌어서 선택할 수도 있고. 근데 어떤 선택이든, 자신이 그 관계를 선택한다면 그 이유를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결정을 내리든 덜 관성적이 된다는 거에는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물: 저는 우정과 설렘을 구분짓지 않는 관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관계를 우정으로 느끼면서도, 설렘이나 호감을 느끼는 건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인간의 관계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스펙트럼인 거 같아요. 그래서 규정되고 요구되는 관계와 감정에 우리에게 억눌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도비: 친구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했는데, 그걸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상대가 제가 연애감정을 느낀다는 식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절대 못하겠거든요. 그런 오해를 만들어내는 이성애규범이라는 게 약화되었으면 좋겠어요. 내 감정이 연애 감정인지, 우정인지 굳이 정의내리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가 그 감정을 정의내리라고 압박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정은 이런 거야, 연애는 이런 거야라는 식으로 관계를 규정하고서 일방적으로 제시하지도 않구요. 추상적이긴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