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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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던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바쁜 지하철역의 속도감에 적당히 발 맞춰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소들을 지나쳐도 시큰둥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하철에 실려 한강을 건널 때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를 보며 그 생경함을 확인하곤 합니다.

그렇게 동경하던 서울사람의 모습이 된 것 같다가도, 지울 수 없는 이방인의 감각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서울살이의 공허함을 마주하고서 동경의 감정은 누구의 것이었는지 외로이 반문합니다.

하나의 장소는 물리적인 공간인 동시에 특정한 정서의 집합이자 정체성이 형성되는 바탕이기에, 터한 곳을 옮기는 일은 정체성을 새로이 구축해갈 테지요. 우리 각자의 경험에 의해 조형된 저마다의 서울이 있을 것입니다. 서울살이 6개월 차 매리와 서울살이 2년차 카레닌이 만나 자신이 경험한 서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은 저한테 일종의 유토피아?"

 

카레닌: 서울살이에 대해 얘기할거니까, 서울에 온 이유로 운을 떼볼까요.

매리: 일차적으로는 대학 때문에 오게 된 건데,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는 게 저한테는 너무 절대적인 무엇이었다는 거? 성적이 좋으니까 집이랑 가까운 대학을 가는 건 상상도 못했고, 그냥 전 당연히 서울에 가는 건데 어느 대학이냐가 달랐던 거예요. 또 서울에 가면 문화생활을 더 다양하고 많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고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았고. 서울은 저한테 일종의 유토피아? 상상 속에만 존재할 법한 공간이었어요. 거기만 가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카레닌: 서울에 간다는 게 절대화되는 만큼 그 선택에 대해서는 별로 이유를 묻지 않는 거죠. 저도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것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작 내가 서울에 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아마 너무 당연해서였을 거예요. 오히려 지방에 남는 건,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마치 서울 소재 대학 입학이라는 하나의 기본값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본값이라는 게 사실 너무나 제한적이고 많은 이들을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건데 학생 때 비교적 공부를 잘했으니까 그 선택지를 별다른 갈등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카레닌: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서울이 고향과, 고향이라는 말도 아직 어색하지만, 다르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쓰는 말투였어요. 보통 사투리를 고친다고 많이들 하잖아요. 이 단어에서부터 일종의 정상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의도하든 아니든 어느 정도 말투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미나 억양 같은 건 여전히 비슷하게 쓰는데 특정 어휘에 대한 감각은 아예 바뀌어버린 거 같기도 해요. 이를테면, 제가 살던 지역에서는 졸리다라는 표현은 되게 어리광부리는 느낌이라 거의 안 쓰고 무조건 잠온다고 해요. 누가 , 졸려이러면 되게 남사스러워하고 왜 그렇게 말하냐고 하는 정도인데, 사실 저한테는 이제 두 개가 완전 동일한 의미거든요. 다른 친구는 여전히 그 감각을 갖고 있는 걸 보고서 깨달았는데 새삼스럽지만 신기했어요.

매리: 제 경우엔 사투리를 안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긴 해요. 사투리를 쓰면 괜히 다른 사람들과 이질감이 드니까? 특히 동기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사투리 때문에 저 혼자 다른 존재 같은 거예요. 그렇게 다른 존재, 조금은 특이한 존재로 보이는 게 별로였어요. 또 사투리 억양이 되게 세니까 혹시나 오해를 만들까 봐 걱정되기도 했구요. 의식적으로 노력한 게 아니라도 계속 표준어로 이뤄지는 수업을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바뀐 것도 있어요. 근데 한편으로 저는 기본적으로 표준어가 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100프로 사투리다, 조금 다른 게 섞였다 이 정도만 알지. 이제 엄마아빠랑 얘기할 때 빼고는 100프로 사투리는 잘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한편으론 원래 언어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좀 슬프기도 해요. 가끔 엄마아빠랑 전화하면서 사투리가 잘 나오면 안도하는 거예요. ‘, 아직 괜찮다.’, ‘아직 살아있다.’

카레닌: 사투리에 대해선 여러 감정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거의 초면인 사이에 , 어디서 왔나봐요?’ 이렇게 물어오는 게 되게 무례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마음이 표준어랑 사투리 사이에 설정되어 있는 미묘한 위계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사투리에 달라붙어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오빠야같이 특정한 어휘를 이른바 애교라고 하는 게 섞인 것으로 이해한다거나 그런 건 또 싫고.

 

"양가적인 감정을 품고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매리: 서울에 와서 처음 1-2달 동안은 제가 비표준어 화자라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어요. 특히 혼자 학교 밖으로 나갈 때. 다른 지역에서 와서 이 동네를 잘 모른다는 인상을 줄 것 같고, 그래서 괜히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 대해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니까 사투리를 내보이면서 말하는 게 좀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사투리를 내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카레닌: 사투리를 내보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막상 점점 안 쓰게 됐을 때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 내가 아닌 것 같다, 나의 중요한 한 부분이 사라졌다,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죠. 양가적인 감정을 품고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매리: 고향에서 떨어져서 살면 내 몸을 의탁할 다른 장소를 필요로 하잖아요. 카레닌 님은 어디에서 살고 계세요?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것은 어떤지 여쭙고 싶어요.

카레닌: 저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요, 혼자 자취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누군가와 한 생활공간에서 더불어 살잖아요. 룸메랑 같이 지내면서 돌봄이나 친밀성같이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말을 좀 이해하게 된 거 같은데.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쌓여서 나중엔 구태여 전후 맥락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서로 알아듣는다거나. 아플 때 누가 옆에 있어서 덜 서글프고,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같이 대처할 수 있고, 힘들어 보일 때 안아줄까?’ 하고 물어오는, 같이 사니까 나눌 수 있는 물질적인 온기 같은 것들. 그런 걸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걸 느꼈어요.

매리: 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았고, 서울로 대학을 가는 건 저한테는 해방의 상징이었으니까, 당연히 자취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취방이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기숙사에 수용되게 된 거죠. 근데 기숙사라는 공간 자체가 되게 열악한 거예요. 예를 들어 의자만 하더라도, 집에 있었다면 부모님이 내 자세를 고려해서 좀 더 인체공학적인 의자를 갖춰줬을 텐데, 기숙사는 의자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제일 값싼 걸 하나 구해다가 놓은 느낌인거죠. 책상과 의자도 높이가 안 맞아서 책을 보면 고개를 엄청 숙이게 되고. 다 똑같은 침대, 책상, 의자들과 함께 나도 같이 수납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대학에 와서 오히려 목, 허리, 어깨가 안 좋아졌는데 기숙사의 열악한 환경이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일종의 피해의식 같기도 한데. 이런 육체적인 고통을 내가 지방에서 왔다는 이유로 감내해야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들어요.

가끔 언제쯤 기숙사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럼 한없이 우울해져요. 그럴 때는 기숙사 철문 이런 게 너무 차갑고 폭력적으로 느껴져요. 사람에 비유하자면 나한테 진짜 못되게 구는 앤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모르고 얘를 좋은 애라고 칭찬하는 그런 느낌. 기숙사라는 게 저를 가두는 감옥 같은데 근데 이게 아무도 감옥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들고. 아무튼 기숙사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엄마아빠한테 자취를 하고 싶다고 몇 번 말해봤거든요. 그런데 서울 자취방은 너무 비싸니까 안 된다고, 최대한 기숙사에 붙어있을 수 있는 만큼 붙어있으라고 하더라고요. 돈 때문에 이 괴로움을 계속해서 앓아야 한다는 게 정말 슬펐어요. 이럴 거면 나 서울에 왜 왔지, 라는 생각도 들고. 서울 로망이 허무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나도 같이 수납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카레닌: 기숙사가 자취나 셰어하우스 같은 다른 주거 형태와 비교했을 때 경제적인 측면에서 뚜렷하게 우위에 놓여 있다 보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미세하게 답답함이 쌓이고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 여기서 그만 살래이렇게 말하기 힘들죠. 한편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밥을 벌게 된다할지라도 그 돈을 가지고 어떤 공간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도 큰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불안을 유예시켜놓고 있지만 얼마 안 가 그 현실을 마주해야한다는 게 때때로 크게 다가오면 서울에서 산다는 게 참 두렵다는 느낌?

매리: 저도 서울에 사는 이상 몸 하나 뉘일 공간을 갖기 위해서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가끔은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빚더미에 앉을 것 같은 기분?

 

"돈...ㅠㅠ"

 

매리: 저는 집에 갈 때랑 기숙사에서 살 때랑 제일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이 과일이랑 아이스크림이에요. 제가 집에 간다고 하면 아빠가 온갖 맛있는 과일들을 다 사놓으세요, 우리 딸 많이 먹으라고. 그래서 제 돈을 들이지 않아도 맛있는 과일을 마구 먹을 수 있죠. 아깝지 않게. 근데 기숙사에 살면 과일 값이 너무 비싸요. 그래서 과일을 못 먹어요. 과일을 먹고 싶은데 못 먹는 거, 그것도 비싸서 못 먹는 게 되게 슬퍼요. 더 슬픈 건 아이스크림이 너무 비싸다는 거. 1,800원을 아이스크림 하나에 지출하려고 하니까 너무 비싸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럼 전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포기한단 말이죠. 저한테 엄청 축하할 만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그걸 생각하면 진짜 진짜 진짜 초라해요.

카레닌: 그런 계산들을 해봐요. ‘내가 용돈을 이만큼 받는데 한 달이 30일이니까, 하루에 얼마를 쓸 수 있네.’ 그렇게 잠정적으로 할당한 하루치의 돈이라는 게 먹는 데만 쓰이면 큰 부담이 없지만 당연히 책도 사야하고 친구들도 만나야하고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일에 다 돈이 들잖아요. 내 소비 규모가 너무 과한가 하고 돌이켜볼 때도 많지만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알바를 하든 과외를 하든 계속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서 지내고 있어요.

매리: 따로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려면, 식비에서 아껴야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하루에 식비 만 원 밑으로 쓰기가 목표거든요.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밥은 하루에 한 끼 밖에 못 먹고, 한 끼를 먹을 때도 싼 걸 잘 골라 먹어야 하는 거예요. 저는 대학생 치고는 용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데도 맨날 이렇게 쪼들리거든요. 그런 걸 보면 저보다 용돈을 적게 받는 사람들은 값이 좀 나가는 건 하나도 못 사고, 밥도 편의점에서 싼 거 사먹고 그렇게 살아야지만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하지, 진짜 그렇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겉으로만 보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고달픔을 품고 살겠지, 하고 생각해요.

카레닌: 과거에 비해 가난이 탈색되어있다고 얘기하잖아요. 이른바 빈곤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거주지도 고시원이나 쪽방 같은 것들로 도시 공간 안에 다 섞여 들어간다든지. 한편으로 학력이나 문화자본, 자산 이런 자원을 갖는 건 힘들지만 상층 사람들이 누리는 소비 수준에는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고, 또 한 사람이 무엇을 쓰고 입느냐를 기반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고. 동시에 사방에 소비를 조장하는 수많은 장치가 널려 있구요. 그런 환경에서 욕망에 이끌려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 거 같아요. 사실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예산 수준에 비해 내가 사고 싶어 하는 것들의 금액대가 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게 되고. 이게 비단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집에서 살 때는 가족의 자원이 곧 나의 자원이고, 나의 계급적 위치랄 것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서울에서는 나 혼자고 특히 익명의 타자들에게는 겉모습으로만 비춰지니까 최대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고 생각했어요.

 

"잘난 사람, 잘난 도시"

 

카레닌: 영화 소공녀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 미소가 연말 시즌이면 거리에 설치해놓는 반짝이는 조형물이랑 주위에 잔뜩 몰려있는 사람들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는 장면인데요. 영화에서도 그런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미소라는 인물과, 화려한 곳에 놓여 있지만 그곳에 동화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내가 겹쳐 보였던 거 같아요. 서울은 물론 크고 화려하고 놀 곳도 많지만 여기에서 뿌리내리기보다는 단지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한국이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던 때에 세워졌을 것만 같은 복도식 아파트가 보여요. 벌새에 나오는 은희 집 같은 거죠. 저에게는 소위 랜드마크라고 하는 것들보다 그런 게 더 서울스럽고 생경한데, 그 풍경 앞에서 생경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면서 내가 가진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을 확인하는 것 같아요.

매리: 저는 가로수길을 처음 갔을 때가 진짜 기억에 남아요. 핫한 브랜드의 한국에 몇 없는 쇼룸이 다 있는 거예요. 지나다니는 차들도 살면서 거의 못 본 것 같은, 되게 비싸 보이는 차들이고 거리의 사람들도 뭔가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녀요. 사람들의 로망이 다 밀집되어 공간인데.. 여기에 살고 싶지는 않다는 느낌이 정말 강하게 들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밥 한 끼 먹는 것도 돈을 따져가며 먹는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 로망들을 누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걸 가짐으로써 더 돋보이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돈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이 되살아나면서 그 공간 자체가 되게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는 공간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요즘은 가로수길에 가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어쩌면 서울에 살면서 계급적 차이를 눈으로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죠. 그래도 여전히 가로수길에 갈 땐 제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좀 괜찮은 옷을 걸치고 가야할 것 같긴 해요.

매리: 그래도 서울에 살면 확실히 문화생활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건 좋아요. 서울에 살기 전에는 네이버 공연전시 판을 볼 때마다 , 여기도 서울? 못 가겠다이랬는데 요즘엔 , 여기 뭐 한 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데?’ 이러니까요.

카레닌: 사실 서울 내에서도 그 공간들은 엄청 이질적이고 맨날 놀러 다니는 게 아니니까 주로 생활하는 환경은 비슷비슷한데, 그래도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누리는 게 많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있죠. 이를테면 브랜드 쇼룸이나 지점이 몇 개 없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처럼, 서울에서는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갈 수 있는 곳이 집에서 있을 땐 접근성이 확연히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경우들이 많으니까. 교통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 것도 정말 큰데, 여행갈 때도 친구들이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살다보니 보통 아예 여행지에서 만나는데, 어디를 가든 서울에서 출발하면 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다른 지역에 살면 다섯 시간씩 걸리는 거죠.

매리:울에 와서 가족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뀐 것 같아요. 그전에는 엄마아빠 사이의 위계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던 거다 보니 그닥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근데 대학은 상대적으로 되게 수평적인 공간이잖아요. 서울에서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 집에 가면 아빠가 엄마를 통제하려고 하는 게 너무 보이는 거예요. 아빠는 제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막 과일 종류별로 사놓고 우리 딸~’ 이러는데 그런 아빠한테 뭐라고 하긴 좀 그렇잖아요. 근데 말 안하고 넘어가기엔 엄마가 너무 안 됐고. 집에 며칠 있으면 엄마랑 아빠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저의 무력감에 물려서 서울에 가고 싶어지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을 때는 아빠가 실무적인 조언을 잘해줘요. 그래서 서울에 있을 때는 아빠가 좋다, 근데 집에 가면 아빠가 좀.. 마냥 웃으며 마주하긴 힘들죠.

 

"가족, 기대고 싶은 도망치고 싶은"

 

카레닌: 우리들 엄마 세대까지도 여성이 대학 가는 게 보편적이지는 않았고 특히나 자기가 살던 지역을 벗어나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었잖아요. 엄마는 계속 고향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을 거의 모르는데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아빠랑 서울 얘기하기도 좀 편하고, 그리고 어쩐지 소위 사회생활에 대한 문제는 아빠한테 조언을 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빠가 꼭 더 좋은 답을 줘서라기 보단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서울에서 살다보면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사먹는 밥 질려, 기숙사 방 너무 좁아, 그러면서 집을 이상적인 곳으로 상정하게 되는데, 당연히 그렇진 않은 거죠. 엄마 아빠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게 될 때 일종의 부채감이나 책임감이 들어요. 이를테면 서울에 있을 땐 전화 한 통으로 돈을 받지만 부모님이 실제로 어떻게 노동하며 사는지 알게 되고, 지난하게 반복되어온 엄마아빠 간의 갈등도 얼마간 여전한 뭐 그런. 그럴 때면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서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와요.

카레닌: 화상수업을 하면 각자가 위치한 공간이 화면에서 얼핏얼핏 보이잖아요. 근데 기숙사는 내부 구조가 동일하니까 기숙사에 사는 다른 누군가와 내 화면이 똑같은 거죠. 배경은 그대로 복제된 채로 사람만 바뀌어 있는 그 화면들이 나란히 놓인 모습이 되게 싫더라구요. 내가 개성이 몽땅 지워져버린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돼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나이 또래 애들 중에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충분히 쾌적한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잘 없고, 순전히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려고만 해도 다른 공간을 빌리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잖아요. 가끔은 어떤 종류의 괴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해요. 내 인스타에는 좋은 곳, 예쁜 곳에서 보낸 순간만 있는데 다시 돌아와서 안착하는 곳은 다 똑같이 생긴 그 방 한 칸이라는 뭐 그런 거.

매리: 그렇게 인스타 감성 카페에 다니고, 사진 찍어서 친구 태그해서 올리는 거 자체가 정서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고향에 있을 때는 무조건적인 애정의 공기가 느껴지거든요. 엄마아빠나 오래된 친구들은 저의 모난 부분까지 그냥 저로 봐주니까요. 그래서 안정감이 있어요. 근데 뭔가 서울에 와서는 내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될 것 같고. 내가 좀 잘 살고 있다는 걸 내색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굳이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뭘 크게 느끼지 않았더라도 그걸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는 거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그냥 잘 살고 있다는 표시로.

카레닌: 존재를 확인받고 싶다는 게 진짜 맞아요. 여기서는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매리: 저는 서울 오기 전까지 내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외로움을 거의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것 같은데 서울 와서는 매 순간이 공허하기도 하고요, 크게든 작게든. 그 공허함이 저는 허기로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정신적인 허기일 텐데 가끔씩 내가 육체적인 허기로 착각하는 거예요. 한때는 그런 허기짐을 느끼면 맨날 편의점 가서 뭐 사와서 먹곤 했는데. 그렇게 입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하게도 조금은 채워지는 게 있더라고요. 룸메가 안 들어와서 혼자 방 한 칸에 있으면 하루에 한 마디도 안하는 날도 있는 거예요. 입을 못 움직이니까 뭐 계속 먹고 싶어지고 그런 것도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요즘에는 그 허기를 채우려고 바쁘게 살아요. 허기를 느낄 틈이 없게. 그렇게 하루를 막 바쁘게 살고 나서 자기 전이 되면 공허함이 밀려오려고 하는데 그걸 또 애써 쳐내는 거예요. 그런 되게, 삼사중적인 의식들을 껴안고 사는 것 같아요.

카레닌: 혼자 있는 시간 자체가 별로라기보다 그 혼자라는 감각을 잘 다루는 일이 어려운 거 같아요. 저는 그동안 외로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되게 못났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른 사람한테 부담을 지우는 거 같기도 했고. 그래서 외롭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사람 혹은 굉장히 독립적이어서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기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되게 허황됐다는 걸 느꼈어요.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그 감정은 너무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혼자라는 걸 좀 더 잘 받아들이게 됐어요.

제가 서울에 살면서 하나의 화두로 갖게 된 건, 어떤 공간을 온전히 나의 생활세계로 여기는 일에 관한 건데요. 고등학교나 대학교 진학처럼 일종의 생애주기마다 주변 환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형성된 인간관계도 다 다르고, 각각의 공간에 축적된 시간들도 분절적이고... 그래서인가 내 정체성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성인이 된 후로 반년 전의 내가 낯설 만큼 많이 변하고 있는데, 그런 동시에 이미 나한테 열려버린 차원이 있고, 거기에 같이 접속해있는 게 관계에서도 중요해져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도 거리가 생기기도 하구요. 관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계속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친구를 만났다가도 우리가 달라져온 걸 발견하고. 그래서 늘 어떤 차원의 정주를 동경해왔어요. 사실 그런 정주의 감각이라는 게 알고 보면 환상에 가까워서 괴리를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어딘가에 좀 당연하게 속해있다, 편안하다, 좋든 싫든 그냥 여기서 사는 거지, 이렇게 느끼게 될지 상상해보게 돼요.

매리: 서울에 와서 진짜 부러웠던 게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애들이거든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는 제가 가지고 있는 좀 불합리한 감정이라든지 흑역사 같은 걸 공유하긴 좀 그렇잖아요.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멀리 있고 그런데 그들과도 이제 삶의 경험이나 처한 상황이 점점 달라지니까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것 같고. 그러니까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요. 이제 나를 그나마 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지? 언제쯤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까, 또는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쯤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체성이 여기저기 흩어져"

 

카레닌: 저 역시도 그런 깊고 절대적인 관계를 원했는데, 물론 지금도 얼마간은 그렇지만, 요즘에는 서로를 아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좌절하기보다 오랫동안 서로를 느슨하게 또 가까이에서 알고 지내는 것을 소중히 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계속해서 관계의 타임라인을 꿰어가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어떤 공간 어떤 관계 어떤 삶"

 

매리: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공간과 관계라는 게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카레닌은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나요?

카레닌: 아마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서울에 살게 될 것 같은데, 더 구체적으로는 빛이 잘 드는 20평짜리 집에, 거실에는 긴 원목 탁자랑 벽 한 면을 다 채우는 서재가 있는 그런 거? 나에게 중요해져 버린 것들, 나한테 영감을 주는 것들, 꾸준히 생각하는 이야기들, 사랑하는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경로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이 삶을 그때 그때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매리: 저는 여건만 허락된다면 좀 떠돌아다니면서 살고 싶다? 어차피 고향이 아니면 어디든 정착하려고 하면 외로울 것 같아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정착하게 된다면 저를 곡해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